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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미소

신라 흥덕왕릉( 興德王陵)

 

 

-흥덕왕릉-

 

신라 흥덕왕릉, 사적 30호, 경주시 안강읍 육통리이 능은 신라 제 42대 흥덕왕(재위 826~836,김수종/김경휘)를 모신 곳이다.
왕은 지금의 전남 완도에 청해진을 두고 장보고를 대사로 삼아 해상권을 장악 하였으며, 당나라에서 차를 들여와 재배하도록 하였다.

 

밑둘레65m직경 22.7m 높이6.4m 되는 이 능의 둘레에는 호석에 십이지신상을 새겼고 그 주위로 돌난간을 둘렀다.

네 모서리에는 돌사자가 있고 앞쪽에는 문인석,무인석을 세웄는데 무인석은 서역인 모습을 하고 있다.(삼국유사,왕력편)에 '능은 안강 북쪽 비화양에 있는데

왕비 장화부인과 함께 매장했다'고 하였다.


1977년에 국립경주박물관과 사적관리 사무소의 발굴조사 때 상당수의 비편과 함께 '흥덕'이라 새긴 비의 조각이 나와 흥덕왕의 무덤임이 밝혀졌다.

무덤의 앞 왼쪽에는 비석을 세웠는데,지금은 비석을 받쳤던 거북이 모양의 받침돌만 손상된 채 남아 있다.

 당시 둘레돌과  십이지신상 양식의 변천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출처:경주시청)

 

 


 

왕릉의 봉분은 밑둘레 65m 신라왕릉 중에서는 중간정도 규모임 당나라 능묘제도를 받아들인 전형적인 통일신라 왕릉의 형식을 하고 있으며
봉분의 크기에서부터 문,무인석 등은 괘릉과 함께 후대 왕릉의 모범이 되었던 왕릉이라 할 수 있다.

 

제단은 탁자모양의 조선왕릉의 석상과는 달리 그리스나 로마의 신전에서 볼 수 있는 형태를 하고 있다.당나라를 통해 서방의 영향을 받은 형식이라 할 수 있다.

호석에 새겨진 십이지신상,입체감이 돋보이는 부조상으로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고, 봉분 바깥쪽의 난간석 난간은 남아 있지 않고 기둥들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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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 전경. 정면에 왕릉이 있고 그 앞쪽에 사자상과 문인석,무인석 1쌍이 세워져 있다
봉분 앞에 세워진 1쌍의 사자상 괘릉의 사자상은 문,무인석 옆에 나란히 세워져 동서남북을 바라보는 모습과는 달리 이곳 흥덕왕릉은 봉분 앞에 세워져 조금은 다르다.


 

 

 

1쌍의 무인석,괘릉과 함께 서역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관복을 입고 있는 1쌍의 문인석 왕릉입구임을 알려주는 화표석 왕릉 한쪽편에 세워져 있는 비석 웅장하게 만들어진 거북받침돌만 남아 있었지만

촬영은 하지 못했다. 아마 다시 찾아 오라는 뜻 같기도 하다.

 

 

 

 

 

경주시 안강읍 육통리 마을 뒷편에 있는 흥덕왕릉. 소나무 모양들이 꾸불꾸불 이상하게도 아름다운 숲을 이루고 있다.

구불구불한 소나무가 흥덕왕에게 고개 숙여 있는 형상이 인상적이고,십이지신상은 있는 곳이라 한번은 가고 싶었는데.

잊고 있었는데 이렇게 세심한 배례에 가슴이 뭉클해 진날이다.

 

 

신라 흥덕왕릉( 興德王陵) 20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