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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작가회의 회원이자 울산작가회의 이사로 활동중인 최 시인의 이번 시집은 과거와 현실을 오가는 등단 10년의 세월이 녹아 있다.
"내 몸 속에는 물이 흐른다/정수리로 들어 온 물은/발 끝으로 흘러가 바다에 닿는다…/처음 바다에 이르는
그가 책머리 자서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시를 바라보는 오랜 관점을 다소 과격하고도 새롭고 통렬하게 전복하려는 시적 무게가 담겨 있다. 특히 현세간의 생활 터전인 우리 땅과 거기서 벌어지고 있는 세상에 대한 조롱과 부정이 날카롭다.
삶의 현실과 현재적 조건에 대한 부정은 곧 새로운 삶의 현실과 미래적 조건을 달성코자하는 시 예술의 오랜 정당한 욕망이다. 시인의 비범한 조롱과 부정은 우리 시단의 오롯한 성과로 볼 수 있다.
최장락 / 접촉
![]() ![]() 2009/07/12 08:48 |
모퉁이를 돌다 살짝 다른 차와 부딪힌다. 가벼운 충격. 문을 열고 내리는 아름다운 여자는 앞 범퍼를 보더니 눈초리가 치올라간다. 그리고는 휴대폰을 꺼내 든다. 쌍방과실. 아무리 아름다워도 자동차 사고는 여자의 목에 핏대를 세우게 하고 가장 냉혹한 적으로 만든다. 어디로 전화를 거는 걸까?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은 뒤 여자는 차를 다른 곳으로 옮기자고 한다. 저 여자의 남자는 올까? 여자의 고급차는 고양이가 손톱을 감추고 할퀸 것처럼 살짝 흠이 나 있었다. 차량용 파우더로 지우면 될 것 같았다. 여자는 내게 명함을 요구한다. 점점 가해자가 돼 가고 있다. 만만치 않다. 적은 아름다움 속에 감춘 비수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잠시라도 여자의 미인계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남자가 오기 전에 끝을 내는 것이 좋다. 167 정도의 미끈한 여자라면 남자의 체격이 상상이 간다. 차를 세워두고 여자는 당당하게 담배를 꺼내 핀다. 여유를 부리는 것이 고단수다. 내가 먼저 피워야 하는데 선수를 빼앗겼다. 담배 냄새가 향기롭다. 몽환계를 쓰는 것 같다. 점점 의식이 흐려진다. 쌍방과실이 아니라 내가 잘못한 것 같다. 가입한 보험사가 어딘지 순간 잊어버렸다. 몸이 서서히 굳어간다. 담배 연기는 이미 폐 속 꽈리마다 가득 찼다. 몽환의 물질을 제거할 해독제가 필요했다. 여자의 작은 입술에서 내뿜어져 나오는 담배연기가 참 맛있어 보인다. 내 주머니를 뒤진다. 담뱃갑이 만져지지 않는다. 점점 손이 마비되면서 여자의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만 쳐다본다. 숨이 막히고 정신이 몽롱해진다. 내 차에서 경적소리가 환청으로 들린다. 다 핀 담배가 내 앞으로 떨어진다. 하이힐로 비벼 끄는 여자의 곱게 뻗은 다리가 내 사타구니 쪽으로 향한다. 피할 수가 없을 정도로 마비된 몸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여자의 입술에서 자랑하듯 거만하게 타오르던 담배가 형체도 알아볼 수 없도록 짓이겨졌다. 온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최장락 시인의 첫시집 [와이키키 브라더스] 중
최영철 시인은 "최장락의 시는 부드럽거나 달콤하지 않다. 망가지고 이탈한 것들이 주는 뒷맛은 불편하고 씁쓸하다"고 표현했으며, 김용락 시인은 "매콤달콤하고 다양한 그의 시적 관심사를 꿰뚫는 일관된 정신은 돋보인다"고 평가했다.
2~3년만에 시집을 묶어내는 요즘 시단의 풍조로 볼 때 등단 10년만에 내는 첫시집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그 자체가 오랜 고심의 산물인 셈이다.
시집에 실린 60편에는 최근의 세상과 수년 전의 세태가 고스란히 녹아있어 독자들에게 또 다른 시간여행이 될 것이다.
한편 최장락 시인의 첫시집 '와이키키 브라더스' 출간 기념회는 10일 저녁 7시 울산문화예술회관 2층 회의실에서 시노래, 국악, 무용 등 문화행사와 곁들여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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