괘릉(원성왕릉) 입구에들어서면 화표석 1쌍이 동서로 서 있고 안쪽으로 가면서 무인상 1쌍,
문인상 1쌍, 돌사자 2쌍이 차례로 왕릉을 지키고 있으며 왕릉 앞에는 혼유석이 놓여져 있습니다.
<아랍계 터번의 모자를 쓰고 深目高鼻심목고비얼굴 특징이 잘 드러나고 있다. >
<깊게 들어간 눈매,오똑하게 높고 큰 매부리코의 눈과 코가 페르시아풍 형태이다>
-주먹을 불끈 쥔 모습에서 강인한 기백이 절로 느껴진다.-
-동쪽에 있는 무인석(武人石)-
아랍의 지리학자 "이븐 쿠르다지바"가 쓴 ‘왕국과 도로 총람’에 의하면 ‘중국의 맨 끝 맞은편에 산이 많고 왕들이 사는 곳이 있는데 바로 신라다.
신라는 금이 많이 나고 기후와 환경이 좋다. 그래서 많은 이슬람교도(페르시아인 포함)가 신라에 정착했다.
이 대목에서 이미 페르시아가 무슬림으로 된 9세기에 신라에 금을 구하고 무역을하기 위해 신라에 온 아랍인(서역인)이 금성에 많았다는 사실이다.
헌강왕 때 처용도 서역인이라는 설과 경주 용강동 고분에서 발굴된 토용중에 서역인 토용이 발견되고 있다. 무덤속에 토용으로 들어가 있는 점과 괘능의 무인석,문인석 형태로
수호석으로 서 있는 점이 애사롭지 않는 점이다.
괘능에 護石으로 한쌍의 무인석의 형태는 영락없이 페르시아인(서역인)이다.
아랍계통의 터번 모자를 쓰고 곱슬 턱 수염 형태와 深目高鼻심목고비 의 특징을 가춘 서역인이 였다.
<서역인 무인상 뒷면 허리춤에 찬 주머니-계산 주머니를 차고 있다. 서역인의 상술을 엿볼 수 있다>
-서쪽에 있는 무인석(武人石)-
-무사 모습의 무인상-
무인석은 얼굴에 서역인의 특징이 나타나 있어서
통일 신라가 서역과도 활발한 문물교류를 하였다는 것을 짐작 할 수 있습니다.
촬영: 2011. 01. 17. 괘릉..
PhotoGraphed by 이난희
Canon EOS 5D Mark II
EF24-70 F/2.8LU
MACRO LENS EF100mm1:2.8L IS U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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