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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미소

경주 괘릉7(판석,탱석,보호석,회랑,난간)

 

괘릉(掛陵)은 괘릉리의 낮은 구릉에 위치하고 있는 무덤이다. 이곳에 무덤이 들어서기 이전에는 작은 연못이 있었는데, 그 연못을 메우지 않고 수면 위에 그대로 왕의 시신을 넣은 관을 걸어서 장사 지냈다고 하여 괘릉이라는 명칭이 붙여진 것이다. 이 능은 신라 제38대 원성왕(785∼798년)의 무덤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정확한 것은 아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원성왕(元聖王)이 죽은 후 봉덕사 남쪽에서 그의 시신을 화장(火葬)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장지(葬地)에 관련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근거를 찾을 수 없다. 그 외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원성왕의 무덤이 토함산 서쪽에 위치한 곡사(鵠寺)라는 절에 있으며, 이 곡사는 당시 숭복사(崇福寺)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최치원의 글이 쓰여진 비석이 숭복사에 놓였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괘릉에 비석은 남아 있지 않고 그 인근에 숭복사터가 남아 있어, 이 능을 원성 왕릉으로 추정하는 견해를 뒷받침하고 있다. 괘릉은 단조롭게 만들어진 신라 시대의 다른 왕릉들과 달리 당시 신라인들의 독창적이고 뛰어난 예술성을 엿볼 수 있는 석조물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는 게 특징적이다. 또한 석조물 가운데 서역인 얼굴의 무인상은 당시 서역으로까지 뻗쳤던 우리 나라의 오랜 대외 교역 활동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주변의 울창한 소나무 숲과 어우러져 많은 볼거리와 이야기거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사적 제26호이다.

-괘릉 정면- 

 

신라 제 38대 원성왕(元聖王)의 능(陵)을 괘릉(掛陵)이라 부른다.

-괘릉 뒷쪽 -

 

흙으로 덮은 둥근 모양의 무덤 아래에는 무덤의 보호를 위한 둘레석이 있는데,

이 돌에 12지신상이 조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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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석- 

 

 

판석(板石)은 평평한 판자 모양의 돌로, 봉분 아랫부분에 돌려져 있다.

그 크기는 높이가 95㎝, 길이가 120㎝에 이른다.

이런 판석의 사이사이에는 탱석(탱石)이 배치되어 있다.         

 

 

 

 

 

 

 

 

-탱석- 

 

탱석은 판석과 함께 하나씩 번갈아 배치되어 있다.

이것은 봉분의 내부로 심지가 뻗어 있어 흙이 무너지는 것을 막아 주는 역할을 한다.

 

탱석의 앞부분은 판석보다 조금 앞으로 돌출되어 있고,

이런 탱석의 전면에 십이지신상이 두 칸 건너 하나씩  조각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보호석- 

 

 

보호석은 지대석 위에 판자 모양의 돌인 판석(板石)을 세우고,

 또 그 위에 납작한 돌을 다시 올려놓은 구조이다.   

각 판석 사이에는 흙이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탱석(탱石)을 배치하였다.       

이런 보호석의 구조는 목조 건축에서의 석조 기단과 같은 구조를 보이고 있다.

 

 

 

 

 

-회랑-

 

 

봉분의 보호석 밖으로 길이가 110㎝, 너비가 40㎝인 부채 모양의 평평한 돌을 깔아 회랑(回廊)을 이루고 있다.

이 회랑의 둘레로 네모난 돌기둥을 세워 난간을 만들었다.

 

 

 

 

 

 

 

 

 

-난간-

 

높이가 1.7m에 이르는 네모난 돌기둥으로 된 난간이 회랑의 둘레를 따라 일정 간격을 두고 세워져 있다.

현재 남아 있는 돌기둥은 모두 25개이다. 원래 이 돌기둥 사이사이에는 2단으로 난간 살대가 끼워져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참고자료: 문화재청>

 

     촬영: 2011. 02. 11 .괘릉(掛陵)

      PhotoGraphed by 이난희 

      Canon EOS 5D Mark II
      EF24-70 F/2.8LU